The President RHEE Syngman Foundation, Inc.
The Corporation is organized exclusively as a charitable and educational organization within the meaning of section 501(c)(3) of the Internal Revenue Code of 1986, as amended (or any corresponding provisions of any future United States Internal Revenue law or regulations thereunder, hereinafter collectively referred to as the Internal Revenue Code), for the following purposes:
Selected Mission Statements
(a) to promote Dr. Rhee Syngman’s lifelong devotion to the founding of the Republic of Korea (ROK) and its people by establishing and safeguarding peace, liberty, and democracy and fighting communism, working for human rights, exalting educational excellence, patriotism and the philosophy of Dr. Rhee Syngman;
(b) to create and facilitate a sustainable educational mechanism for Korean descendants residing in the United States or abroad as well as global citizens and impart the true history of the ROK through research and educational programs highlighting Dr. Rhee Syngman’s leadership during the struggle for independence and ultimately creating the ROK under United Nations directives and the support of the United States of America, especially during the period of 1919 (creation of the Korean Provisional Government) through August 15, 1948 (the official founding of the Republic of Korea), to his last day as President in 1960;
(c) to promulgate and honor the lofty ideals and great achievements of Dr. Rhee Syngman (1875 – 1965), the first and founding President of the Republic of Korea, who believed, “United We Live, Separate We Die” in his efforts to establish a unified and democratic Korean peninsula;
(d) to stimulate and enhance a sense of pride and self-esteem as Korean descendants, especially for children and youth, understanding that Dr. Rhee Syngman was one of the great national presidents in history who pursued academic excellence in both fields of academia – the East (e.g. attempting 7 times to pass the Chosun (Korea), the highest level national board examination beginning at the age of 13 until he was 20 years old) and the West (e.g. earned a BA, MA, and Ph.D. from George Washington University, Harvard University and Princeton University in only 5 years and 6 months ─ setting a high standard for school children, youth and collegiate students, and
(e) to formulate and initiate meaningful projects for sustainable advancement in any other activities which are consistent with Section 501(c)(3) of the Internal Revenue Code and applicable state laws.
대한민국 건국 대통령 이승만
(1975 – 1965)
총체적 측면에서, 조선왕조는 서방과의 외교적, 무역적 교류를 반대하고(쇄국정책) 또 아시아와 유럽 제국들의 한반도를 점령 쟁취하고자 하는 야욕의 소용돌이 속에 지나친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결국 일본은 중국과 러시아와의 전쟁에서 승전한후 1910년 조선 왕국을 식민지화 시켰고, 그들의 조선왕국과 국민에 대한 악행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악의 극치에 달하여 일본강점기 36년은 ‘한민족의 대 고난’의 역사였습니다. 인권이란 단어는 멸시와 희롱으로, 경제력은 일본인의 착취로 소멸되고, 정치와 행정은 일본의 하수 미개 집단으로 처우된 폭정, 문화와 교육과 언어는 ‘조선왕국 일본화 전략’으로 요약 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역경 속에서 하나님은 2차 세계대전으로 일본 제국을 패전시키고, 1945년 완전 굴복함으로, 한반도는 ‘일본의 식민국’ 에서 참 해방을 맞았던 것입니다. 또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단련하고 교육하여 예비시킨 이승만(1875-1965) 박사를 쓰시고 대한민국 건국을 유엔총회(The United Nations General Assembly: 1947.11.14)의 결의에 따라 1948년 5월 10일 총선을 실시케 하셨읍니다. 이어 5월 31일 제헌국회 (의원198명) 에서 이승만 박사는 초대 국회의장 으로 선출되셨으며, 국회의장 으로써 개회연설을 마치시며: 말씀 하시되 “대한민국 독립민주국 제 1차 회의를 여기서 열게 된 것을 우리가 하나님에게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종교, 사상 무엇을 가지고 있든지 누구나 오늘을 당해가지고 사람의 힘으로만 된 것이라고 우리가 자랑할수 없을 것입니다. 그럼으로 하나님에게 감사를 드리지 않을수 없읍니다. 나는 먼저 우리가 다 성심으로 일어서서 하나님에게 감사를 드릴 터인데 이윤영 의원 [목사] 나오셔서 간단한 말씀으로 하나님에게 기도를 올려 주시기를 바람니다 (제헌국회 국회 속기록 에서 발췌).”
7월 1일 국회에서 국호 (나라의 이름)를 ‘대한민국’ 으로 결정 되었으며, 7월 17일 국회에서 초대 대통령으로 선출 되어, 7월 24일 초대 대통령으로 취임 하셨으며,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수립을 선포 하셨읍니다.
건국 초대 대통령 이승만 박사의 장엄한 업적중 하나를 선택한다면 이승만 박사는 교육 대통령 이였습니다. ‘의무교육’ 은 그중 독보적 입니다. 1948 건국당시 한국의 교육수준 과 현실은 문맹률 이 78% 이였쓰며, 나머지 22% 의 초등학력, 고등학교, 대학 또는 대학원 이상의 학력자 들 이였읍니다.
그로부터 10년 후 1959년 대한민국 국민의 교육 성취도는 96.4%가 초등학교, 중고등학교 학력자이며 나아가서는 3.6%가 대학과 그 이상 의 학력이었습니다. 이것은 곧 이승만 박사께서는 총체적 국가 발전의 기본전략이 교육인것과 따라서 교육적 기반을 성실하게 구축하셨습니다.
그는 청소년기에 이미 한문학자가 되였고, 조선왕조를 위한 개화운동 으로 시작된 ‘황제폐위 음모죄명’ 으로 투옥살이 5년 7개월, 미국과 국제적 영역에서 펼친 고급외교력을 통한 독립운동의 투사들중의 대표적 투사였으며, 비폭력적 지도자들의 대표적 지도자였으며, 총 5년 5개월만(1905년 2월 – 1910년 7월)에 조지 워싱턴 대학교, 하버드 대학교와 프린스턴대학교에서 학사, 석사, 박사(국제 정치학) 학위를 취득한 천재였습니다.
이승만 박사의 세계의 흐름을 통찰하고 예지하고 대처하는 국가 운영의 지도력이 없었다면, 우리의 조국 땅 한반도에 미국식 자유민주주의 를 건국 이념과 근간으로한 대한민국은 없고 소련의 야심작으로 이루어진 김일성 왕조만이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건국대통령 이승만 박사의 비전과 업적의 수혜자 입니다. “우리는 뭉쳐야 합니다, 우리는 뭉쳐야 합니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습니다.” 라는 이승만 박사의 육성을 우리는 잊어서는 안됩니다.
2015 년 10월 23 – 24일 대한민국 역사박물관과 연세대학교 이승만 연구원 공동 주최로 개최된 “ <이승만 일기 (1904-1934 & 1944)> 발간기념 국제학술회의” 에서 류석춘 박사 (기조발제자 및 연세대 <이승만 일기> 공편자 대표) 는 “이승만 박사는 대한민국의 미래 100년을 통찰하고 예지했든 역사상에 유일한 선각자” 이였다고 발표 했습니다. 국제학술대회 참가자들의 일치된 이 존엄한 평가는 또한 우리 재단의 Research Fellows 와 지도자들의 일치된 평가와 결의입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로 시작하여 건국된 대한민국”
섭리아래 영원하리라!